재난 심리학

모든 재난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daon-eju 2025. 7. 18. 12:40

우리는 ‘재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외부에서 갑자기 찾아온 충격적 사건을 떠올린다. 지진, 전쟁, 홍수, 팬데믹, 혹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교통사고나 화재 같은 불의의 사고들. 하지만 이 글은 질문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만약 우리가 겪는 모든 재난이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기존 재난 심리학의 틀을 뛰어넘는 실험적인 관점이지만, 우리 내면을 다시 바라보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여정을 제공할 것이다.

 

모든 재난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

 

재난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현대 재난 심리학은 대체로 ‘외부 자극 → 심리적 충격 → 회복 또는 트라우마’라는 흐름을 따른다.
즉, 바깥에서 벌어진 사건이 개인의 마음에 충격을 주고, 그로 인해 불안·우울·PTSD 등이 발생한다는 구조다.

하지만 이 관점은 외부 중심성(external determinism)이라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 외부 사건이 없으면 재난도 없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같은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며 성장하고, 어떤 이는 무너져버린다. 동일한 ‘재난’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경험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재난은 정말 밖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 발현된 것일까?

 

내면의 붕괴 : 재난은 심리적 균열의 증폭일 뿐

어떤 사람에게 재난은 ‘삶의 전환점’이 되고, 다른 사람에겐 ‘인생의 종말’이 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사람마다 ‘기저 심리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원래도 극심한 통제욕을 가지고 살았고, 누군가는 항상 불안 속에서 미래를 상상했으며, 또 어떤 이는 관계에 대한 깊은 결핍을 안고 살아왔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사람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던 균열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며 비로소 ‘재난’이라는 심리적 현실이 형성되는 것이다.

 

즉, 재난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구조가 무너지는 과정이다.

 

외부 없는 재난 : 재난을 겪지 않아도 무너지는 심리

더 흥미로운 사실은, 외부 재난이 없어도 사람들은 심리적 재난을 겪는다는 점이다.
실제 재해를 겪은 적 없고, 전쟁이나 자연재해도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겪는 불안, 공허, 무기력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은 어쩌면 존재론적 재난(ontological disaster)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지고, 인간관계는 표면만 맴돌며,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신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는 것.
이는 외부적 사건이 아닌, 삶의 구조 자체가 낳는 내면의 붕괴다.

 

외상(trauma)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일반적으로 외상은 “큰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많은 심리학자들은 외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르지 못하고 흐르지 못하는 구조적 상태라고 본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이 ‘외상’이 되느냐는 그 사건 자체보다, 그 사람이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내적 구조가 준비되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내적 구조는 개인이 가진 ‘관계 경험’, ‘감정 표현 방식’, ‘자기 가치감’ 등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외상은 결국 개인의 내면 구조에 달린 문제이며, 어떤 경우엔 외부 사건 없이도 형성된다.

 

사회적 재난조차도 개인화되는 시대

최근에는 한 사회 전체가 겪는 재난이 증가하고 있다. 팬데믹, 기후위기, 경제위기 등.
하지만 이런 사회적 재난조차도, 각 개인의 심리적 구조 속에서 다르게 번역된다.

예를 들어,

  • 어떤 이는 팬데믹을 ‘사회와의 단절’로 받아들이고 고립감을 겪으며,
  • 또 어떤 이는 그것을 ‘쉼’으로 해석하며 오히려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하나의 동일한 사건조차, 내면에 따라 재난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재난은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내면에서 구성되는 체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회복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재난 심리학은 주로 회복(resilience)의 조건으로 지지체계, 사회 자원, 의료적 개입을 강조한다.
물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이다.

재난은 내면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것을 드러나게 만드는 거울에 가깝다.

그렇기에 회복은 단지 시간이나 도움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상태였는가’,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가’라는 자기 성찰에서부터 출발한다.

 

‘내면의 재난’을 다룬다는 것의 의미

이 글의 핵심은 단순히 철학적인 사유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면서도, 속으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함이다.

  • 재난은 뉴스 속 사건이 아니다.
  • 재난은 내면의 균열이다.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재난을 말할 언어조차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외부 없는 재난’이라는 이 낯선 개념은 우리에게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내면으로 향하는 재난 심리학

“모든 재난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이 문장은 불편할 수 있다.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이 말하는 바는 정반대다.

“당신이 겪은 재난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진짜입니다.”
그리고 그 재난은 당신 안에서 이해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외부의 사건을 바꿀 순 없어도, 내면의 구조를 이해하고 다르게 구성하는 순간, 우리는 재난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이 글이 익숙한 재난 심리학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 안에, 아무도 모르는 재난이 숨어 있다면 그 또한 인정받아야 할 현실입니다.

당신의 내면은 설명될 가치가 있고, 그 재난 역시 누군가가 경청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