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과잉모방, 언제까지 괜찮을까? 관찰 학습의 전환 시기
'쓸데없는 것까지 따라하는' 아이의 행동, 정상일까?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어른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볼 때, 종종 의문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컵을 마시기 전 괜히 바닥을 두 번 두드리거나, 문을 열기 전에 이상한 제스처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중요한 ‘행위’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동이 과잉모방(overimitation)을 하는 이유와, 어떻게 선택적 모방 능력으로 전환되는지를 설명하며,
부모가 자녀의 모방 행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관찰 학습이란? - 인간은 보고 배운다
관찰 학습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이 개념을 가장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는 1961년 보보 인형 실험(Bobo Doll Experiment)을 통해 아이들이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인형을 때리는 장면을 본 후, 같은 방식으로 인형을 때리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그대로 실행하는 학습이 가능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관찰 학습은 아동기의 핵심 학습 메커니즘이며, 부모, 교사, 또래의 행동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동은 타인의 행동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분석하기보다, 전체적인 ‘행위 패턴’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전체적 복제가 때로는 불필요하거나 부정확한 행동도 포함하는데, 이것이 ‘과잉모방’ 현상입니다.
과잉모방이란 무엇인가?
과잉모방은 아동이 목적과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행동까지 모방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상자를 열기 전에 상자 위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이 ‘툭툭 두드리는 행동’까지도 필수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고 따라 합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따라 하기와는 다릅니다. 과잉모방은 아동이 행위의 의미나 목적성을 평가하지 않고 전반적인 행동 흐름을 그대로 복제하는 심리적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과잉모방의 원인
- 사회적 소속감의 욕구
- 아동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정, 또래, 교실 등)의 규범을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 어른의 행동을 모두 따라 함으로써 ‘나는 너와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을 형성합니다.
- 규칙 기반 사고
- 아동은 특정 절차나 행동 순서를 일종의 ‘규칙’으로 인식합니다.
- 따라서 비논리적인 행위라도 순서에 포함되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간주합니다.
- 목적과 수단의 혼동
- 성인과 달리, 아동은 어떤 행동이 ‘수단’이고 ‘목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 그 결과, 목적 달성에 필요 없는 행동도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됩니다.
- 인지적 유연성 부족
- 6세 이하 아동은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능력이 제한적입니다.
- 이로 인해, 비효율적인 행동도 학습 초기에는 동일하게 재현됩니다.
선택적 모방: 필요한 것만 따라 하는 능력의 시작
선택적 모방(selective imitation)은 불필요한 행위를 걸러내고 핵심 행동만 따라 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뇌의 전두엽 기능 발달, 사회적 사고력 향상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발달 과정에 따른 모방 특성 변화
- 2~3세: 모든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모방. 과잉모방이 매우 흔함.
- 4~5세: 모방 속도가 느려지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가리기 시작함.
- 6세 이후: 필요성과 효율을 따져서 행동을 선택. 목적 중심적 사고로 전환.
이러한 변화는 아동의 인지 발달과 경험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부모는 자녀에게 ‘생산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해야 합니다.
부모를 위한 실천 전략: 모방을 성장 기회로 바꾸기
1. 의미 있는 행동만 모델링하기
부모가 아동 앞에서 특정 행동을 시연할 때, 불필요한 제스처나 장난을 최소화합니다.
정확하고 핵심적인 행동만 보여주는 것이 모방 학습의 질을 높입니다.
2. 차이를 인식시키는 언어적 피드백 제공
같은 결과를 얻는 방법 중 효율적인 방법을 설명해 줍니다.
예: “이건 도와주는 행동이고, 이건 꼭 필요한 거야”라는 식의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전달합니다.
3. 모방 이후 되묻기 전략 활용
아이가 어떤 행동을 따라한 후, “왜 그렇게 했을까?”라고 질문하면 사고 확장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 모방을 넘어서 사고력 발달로 이어지는 효과적 방식입니다.
4. 규칙은 단순화하되, 논리 기반으로 설명
아동은 단순 명령형보다 맥락과 이유를 이해할 때 행동을 잘 따릅니다.
“이건 위험해서 하지 말자”는 식의 맥락 설명은 모방의 과잉을 줄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5. 과도한 미디어 노출 관리
유튜브나 단편 애니메이션은 극단적인 모방 행동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실과 다른 과장된 표현은 아동이 맥락 없이 따라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례로 보는 과잉모방의 실태
사례 1: 4세 남아는 TV에서 본 요리쇼를 따라 하며 칼질까지 모방. 칼을 쓰는 행위가 위험함에도 행동 재현에만 집중함.
사례 2: 5세 여아는 교사가 손을 허공에 돌리는 제스처를 학습 활동 중 흉내 냄. 해당 제스처는 의사소통과 무관했음.
이처럼, 과잉모방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환경의 구조’에서 기인한 현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문제행동으로 판단하기보다 학습 구조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이의 모방은 ‘틀린 행동’이 아닌 ‘발달의 신호’
아동이 쓸데없는 행동까지 따라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학습 과정이며, 오히려 성장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방이 ‘무조건적인 복제’에 그치지 않고,
점차 선택과 사고의 능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동의 모방 행위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행동의 목적을 함께 탐색하고, 의미 있는 선택을 유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