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권하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일곱 걸음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 위기는 찾아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 자연재해, 상실, 감염병, 혹은 단 한 통의 전화 한 통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합니다. 위기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어요. 하지만 모두가 나에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라고만 말하더군요.”
그 말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몸은 일상에 복귀해도, 마음은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재난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지연 회복’이라고 부릅니다. 회복은 강요로 되는 게 아닙니다. 느리고 복잡하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정상’이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은 심리학자들이 권하는, 위기 이후 다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곱 걸음입니다.
회복에는 ‘나만의 속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이제 울지 말아야지”, “빨리 잊어야지”라고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이젠 좀 괜찮아질 때도 됐잖아”라며 무심히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시간표대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위기를 겪은 직후, 무기력이나 불안, 갑작스러운 분노,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 반응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회복의 기준은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가 말해주는 것이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들쑥날쑥해도 괜찮고, 울다가 웃다가 다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마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고 단순한 일부터 다시 해보자
위기를 겪은 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지?”, “전처럼 돌아가지 않잖아.” 하지만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이불을 개거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거나, 햇볕 아래서 5분만 산책하는 것.
이런 일상의 루틴이야말로 내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심리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선 복잡한 계획보다 단순한 루틴이 회복을 이끌어줍니다.
그렇게 작고 확실한 실천을 하루하루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표현하는 것’까지
마음속에 쌓인 감정은 표현되지 않으면 굳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슬픔이나 두려움이 밀려오면 그것을 ‘견디는’ 데만 집중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표현은 꼭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 “오늘은 마음이 무겁다.”
- “괜히 짜증이 난다.”
- “생각이 너무 많다.”
이렇게 솔직하게 내 감정을 단어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줄어듭니다. 글로 써도 좋고, 가까운 사람에게 말로 해도 좋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표현을 통해 뇌가 감정을 정리하고 구조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걸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순간부터 회복은 조금씩 가능해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들어줄 사람 한 명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위기를 겪은 사람에게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라며 충고부터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 이후의 마음은 조언보다도 ‘안전한 청자’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내 감정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저 끊지 않고, 판단 없이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상담사, 친구, 가족, 혹은 동료.
말을 하지 않아도, 눈을 맞추고 있어주는 사람 한 명이 있다면 감정은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찾습니다.
정보의 ‘과잉’은 감정을 다시 무너뜨릴 수 있다
위기 이후에는 우리가 본 뉴스, 영상, 재난 관련 정보들이 다시 불안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감정이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불안과 관련된 자극이 심리적 재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일시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거나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뉴스 알림을 끄고, SNS 사용 시간을 줄이며, 충격적인 이미지를 일부러 피하세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전략을 ‘정보 디톡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감정을 안정시키고 회복력을 회복하기 위해, 뇌에 과한 자극을 멈추는 기간이 꼭 필요합니다.
기억을 덮지 말고, 천천히 다시 정리하기
“잊자”, “생각하지 말자”는 말은 결국 기억을 더 강하게 각인시키는 역효과를 냅니다.
그보다 나은 방법은,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꺼내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용히 그날을 떠올려보며 말을 정리하는 것.
이런 과정이 기억을 감정적으로 재배열하게 해주고, 더 이상 그 순간에 머물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기억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바꾸어야 할 대상입니다.
회복을 ‘느끼는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라
회복은 누가 인증해주는 것도, 외부에서 확인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오늘도 살아냈다”는 감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회복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좋습니다.
식사를 제시간에 했거나, 누군가에게 웃었거나,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면 그 자체가 회복의 증거입니다.
이런 순간을 하루에 한 줄씩 적어보세요.
그 기록이 쌓이면, 나중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겨냈다. 아니, 지금도 계속 이겨내고 있다.”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결국 ‘다시 살아보는 것’
위기 이후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불완전해도 괜찮습니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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