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이후, 마음까지 돌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약속
지진, 홍수, 대형 화재, 팬데믹, 참사와 같은 대규모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일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피해로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집이 무너지고 길이 끊기는 것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구조하고, 복구하고, 다시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이것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과제입니다.
오늘은 ‘심리적 재난 대응’이라는 다소 낯설 수 있는 개념을, 국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재난은 ‘심리적 후유증’을 남긴다
재난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날의 기억, 그때의 감정, 그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힘들어합니다.
- 생존자들은 무력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 유족은 상실감과 우울감 속에 고립되며,
- 구조대원조차도 심리적 탈진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노출됩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재난 경험자 중 약 20~30%는 중등도 이상의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정신적 회복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심리방역’
오늘날의 재난 대응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뉩니다.
- 물리적 대응: 구조, 이송, 치료
- 사회적 대응: 주거, 생계 지원, 지역 복구
- 심리적 대응: 정신 건강 회복, 트라우마 지원
이 중에서도 세 번째, ‘심리적 대응’은 최근 들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집단 트라우마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심리방역 시스템을 구축해나갑니다:
재난심리지원센터 운영
대한민국 보건복지부는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심리지원단’을 현장에 파견합니다.
이들은 심리상담사, 정신건강 전문의,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되며,
재난 직후부터 생존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심리 평가 → 정서 지원 → 고위험군 치료 연계 과정을 체계적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중장기적 상담이 이뤄지도록 지원합니다.
위기 핫라인 및 다채널 지원
심리적 위기는 재난 직후뿐 아니라 수개월 후에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는 다양한 채널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 ☎ 1577-0199 (정신건강 상담전화)
- 재난심리 스마트폰 앱
- 이동형 심리지원 차량 운영
언제 어디서든 “당신의 마음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국가가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회복 단계에서의 집단 심리 프로그램
재난이 어느 정도 수습된 후에는, 생존자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 심리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 아이들을 위한 감정 표현 워크숍
- 어르신 대상 인지·감정 회복 활동
- 구조대원과 공무원을 위한 심리 탈진 해소 프로그램(디브리핑) 등
이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서, 함께 회복하고, 서로를 회복하는 공동체 기반의 심리 지원을 의미합니다.
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은 9·11 테러 이후, ‘FEMA(연방재난관리청)’ 내에 심리회복 부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난 경험자에게 심리적 회복금(Psychological First Aid Funding)을 지원하며, 현장 구조요원 교육에도 ‘심리적 응급처치(PFA)’ 과정을 필수화했습니다.
일본 역시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해 정신의료 지원팀(DPAT)’을 창설해 재난 발생 24시간 이내에 전국 어디든 출동 가능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심리적 재난 대응을 ‘공공의 의무’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준비해야 할 것들
우리나라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갈 길은 남아 있습니다.
- 심리지원이 일회성 상담에 그치지 않도록 ‘중장기 추적 시스템’ 필요
- 트라우마 예방 교육이 학교, 직장 등 일상 조직에도 확대되어야 함
- 노인, 장애인, 외국인 등 취약계층 맞춤 심리서비스 체계화
- 언론의 자극적 보도로 인한 2차 트라우마 방지 정책 강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난이 ‘국가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감각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국가’가 진짜 안전한 국가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재난 이후에도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회, 그리고 그 마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국가가 있다면, 사람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심리적 회복은 단순한 위로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도, 인력, 문화, 그리고 관심이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재난 이후에도 사람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재난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만, 다시 세우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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