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심리학

재난 후 나타나는 일반적인 심리 반응

daon-eju 2025. 6. 25. 10:33

“몸이 괜찮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뉴스 속 재난이나 사고를 보며, “나였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신체적 피해 이상으로 심리적인 충격을 오래도록 안고 살아갑니다.

생존자들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두려움, 슬픔, 분노, 무기력함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극도로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재난 후 흔히 나타나는 심리 반응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재난 후 나타나는 일반적인 심리 반응

공포와 불안: 마음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때

재난 직후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느낍니다.
이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재난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뇌에 깊이 각인되어, 그 후에도 유사한 장면이나 소리, 분위기만 접해도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진을 겪은 사람은 이후 작은 진동에도 놀라며 긴장하게 되고, 화재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연기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민 반응은 뇌가 여전히 ‘위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함과 감정의 마비: 감정을 꺼버리는 두 번째 본능

재난을 겪은 일부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태는 감정적 무기력, 또는 심리학적으로는 ‘감정 둔마’ 혹은 ‘해리’라고 불립니다. 이는 마음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일종의 정신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감정이 마비된 듯한 상태,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 심지어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현상은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수면장애와 악몽: 재난은 밤에도 계속된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자려고 누우면 재난 당시 장면이 떠오르거나, 잠에 들자마자 악몽을 꾸고 땀에 흠뻑 젖어 깨기도 합니다.
이는 단지 기억 때문이 아니라, 뇌가 여전히 위기를 ‘현재진행형’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수면은 신체 회복뿐 아니라 정신 회복에도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수면장애가 장기화되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며, 정서적으로도 더욱 취약해집니다.

 

분노와 자책: 마음속 방향 잃은 감정들

재난 후 사람들은 종종 분노를 느낍니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했나”, “누가 잘못한 건 아닐까”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입니다.
이 분노는 자신, 타인, 심지어 운명이나 신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내가 더 도와줄 수 있었는데…”, “내가 살아남은 게 죄책감이 들어요”와 같은 자책생존자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는 특히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경우, 혹은 구조나 대피 중 누군가를 놓쳤다고 느낄 때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뇌도 피로하다

재난 이후에는 일상적인 일조차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한 실수가 잦아지고, 평소보다 쉽게 피로를 느끼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심리적 과부하 상태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저하 현상입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연령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심리 반응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린아이는 퇴행 행동(밤에 오줌싸기, 엄마에게 매달리기)이나 과도한 울음을 보일 수 있고, 청소년은 무기력하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불안, 분노, 대인기피로 반응하며, 노년층은 고독감과 우울 증세가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반응은 모두 개인의 특성, 당시 상황, 주변 지지체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개별적인 관찰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마음도 회복이 필요합니다

재난은 눈에 보이는 피해만 남기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심리 반응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문적인 심리치료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재난 이후 “당신 괜찮아?”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당신의 마음은 괜찮나요?”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은, 이러한 반응들이 비정상이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혹은 누군가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절대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