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심리학

언론이 재난을 보도할 때 지켜야 할 심리적 윤리

daon-eju 2025. 6. 25. 13:16

정보 전달 그 이상의 책임, 마음을 지키는 언론 보도의 기준

재난은 단순히 물리적 피해만을 남기지 않습니다.
재난의 장면은 생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국민 전체에게도 심리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론 보도’가 있습니다. 언론은 재난 상황을 국민에게 신속히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 보도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감정 상태와 심리 회복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언론이 재난을 보도할 때 지켜야 할 심리적 윤리

자극적 보도는 또 다른 ‘심리 재난’을 만든다

재난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 희생자의 시신,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 등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자극적 화면과 실시간 생중계는 ‘재난 재경험’(vicarious trauma)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TSD)과 유사한 정신적 피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피해자 가족이나 생존자들에게는 이 보도가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재난이 ‘진행 중’이며, 반복 노출은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피해자의 존엄성과 사생활 보호

재난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 중 하나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입니다.
카메라 앞에 선 유가족이나 생존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라고 묻는 행위는 결코 ‘공감’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감정을 강요하거나, 눈물을 끌어내려는 질문은 감정 착취(emotional exploitation)에 가깝습니다.
언론은 피해자의 얼굴, 이름, 가족사 등을 공개하기 전에 당사자의 동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그들의 사적인 고통이 공공의 소비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확산은 심리적 불안을 키운다

재난 상황은 언제나 긴박하며, 정보가 빠르게 퍼집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보도된 내용은 허위 정보 또는 불안을 조장하는 루머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봉쇄된다” 등의 과장된 표현은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킵니다.
이러한 불안은 공황 심리, 사회적 혼란, 비이성적인 행동(사재기, 탈출 시도 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언론은 “빠른 속도보다 정확한 내용”을 우선시해야 하며, 검증되지 않은 자료나 익명 제보에 의존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회복과 희망을 전하는 보도도 필요하다

재난 이후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단지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메시지와 희망의 서사도 필요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연대, 구조자들의 노력, 생존자의 회복 이야기, 지역사회의 지원 활동 등은 공감과 연대를 자극하며 심리적 치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보도 방향이 단순한 비극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회복 가능성을 제시하고 인간성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때, 언론은 진정한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아동·청소년 시청자를 고려한 보도 가이드

재난 보도는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은 재난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정 조절 능력과 인지력이 성인보다 낮기 때문에 공포, 불안, 혼란을 더 쉽게 느낍니다.

따라서 언론은 잔혹하거나 충격적인 장면의 반복 노출을 자제하고, 청소년 보호 시간대에 적절한 편집과 자막을 통해 보도 내용을 조정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과 재난 뉴스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보조적인 설명자료나 전문가 코멘트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언론의 ‘심리적 책임’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언론은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한 공적 기관입니다.
특히 재난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감정, 판단,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심리적 책임까지 포괄하는 윤리 기준이 요구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유네스코, WHO 등 국제기구도 재난 보도와 심리 윤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국내 언론사들도 이에 맞는 자체 규정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진실만큼 중요한 것은 ‘전하는 방식’입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난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결국 그 재난을 ‘어떻게 보았느냐’,

즉 언론의 보도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언론이 재난을 보도할 때 지켜야 할 심리적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의 본질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그 진실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공감하고 배려하며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언론이, 진정한 ‘공공의 눈’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