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코로나19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직 실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마트에서 마스크가 사라지고, 화장지가 동나고, 거리에는 줄을 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확진자도 주변에 없었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반응했다. 그것은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퍼지는 무형의 감염, 바로 불안이었다. 우리는 종종 재난이 물리적인 피해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대다수의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확산되는 것은 감정이다. 그 중에서도 불안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빠르다.
이 글에서는 불안이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전염되며, 왜 감염보다 먼저 퍼지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려 한다.
감정도 ‘전염’된다 : 감염처럼 퍼지는 불안
‘감정의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이는 한 사람의 감정이 타인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 느끼는 불안, 공포, 패닉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옮겨진다.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 몸짓, 행동을 통해 불안은 퍼진다.
가령, 지하철역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이유도 모른 채 뒤따라 뛰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는 인지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인간의 본능적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느끼고, 느낀 대로 움직인다.
이 불안의 전염은 SNS 시대에 더욱 강력해졌다.
실제 위험이 닥치기도 전에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과장된 카톡 메시지,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불안을 급속도로 확산시킨다.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 공유되는 사회에서, 불안은 그 자체로 ‘바이럴 콘텐츠’가 된다.
불안이 빠르게 퍼지는 이유
불안은 왜 이렇게 강력하게 전염되는 것일까? 몇 가지 심리적 기제를 살펴보자.
- 생존 본능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 신호’에 민감하다.
다른 사람의 공포 반응을 보며 ‘나도 위험한 상황인가?’를 판단한다.
이것은 원시 시대부터 진화해온 본능으로,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었다.
- 모델링 효과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모델링(modelling)’이라고 한다.
재난 초기에 마스크를 사는 사람들을 본 후, 다른 사람들도 마스크를 사들이기 시작한 현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촉매제다.
- 확증 편향
사람은 불안할수록 ‘자신의 걱정을 뒷받침해주는 정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백신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부작용’ 관련 정보만 검색하거나 공유한다.
이런 편향된 정보 흐름이 불안을 더욱 키운다.
불안의 악순환 : 감정 → 행동 → 사회적 반응
불안이 전염되면, 사람들은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그 행동은 다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불안의 악순환이다.
- 소수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한다
→ 뉴스를 본 다수가 따라 한다
→ 진열대가 비고
→ 실제로 공급 문제가 생긴다
→ 불안이 현실이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처음에는 사실보다 감정이 앞섰다는 점이다.
즉, 불안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내는 감정일 수 있다.
불안을 다루는 방법: 정보보다 감정을 먼저
불안을 단순히 “사실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인정하고 다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감정의 이름을 붙이기
: 감정을 인식하면 통제가 쉬워진다. “나는 불안하다”, “지금 이 상황이 두렵다”
▶ 감정보다 빠른 정보 차단
: SNS는 감정의 확성기 역할을 하므로, 일시적 차단도 도움이 된다. 불안할수록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멀리한다.
▶ 타인의 불안에 거리두기
: '나의 불안'과 '타인의 불안'을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감은 필요하지만, 과몰입은 피해야 한다.
회복력은 불안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자각하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심리적 회복력(resilience)의 핵심이다.
재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도, 우리는 그 감정에 휩쓸릴지, 혹은 받아들이고 관리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통제되지 않을 때, 감염보다 더 빠르고 더 위험하게 사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
재난을 막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뤄야 할 것은 우리의 감정이다.
왜냐하면 공포가 먼저 퍼지면, 대응도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이러스보다 불안을 먼저 인식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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