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놀 줄 아는 아이가 위기에서도 함께 도울 줄 안다”
요즘 아이들은 재난 상황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지진 뉴스, 태풍 방송, 학교의 정기적인 대피훈련 등. 예전에는 드문 일이었던 재난이 이제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재난 교육에도 불구하고, 정작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대응하는 능력은 아이마다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누가 더 빠르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친구를 챙길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 답은 ‘공감놀이’를 얼마나 많이 경험했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초등학생 시기의 ‘공감놀이’ 경험이 아이들의 재난 대응 능력과 어떤 심리적 연결고리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감놀이는 무엇인가?
공감놀이는 단순히 함께 노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고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을 포함한 놀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 역할놀이(병원놀이, 소방관 놀이, 가족놀이)
- 협동보드게임(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이기는 게임)
- 감정카드를 이용한 대화 게임
- “너라면 어떻게 할래?” 식의 상황극 만들기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정서적 공감력)을 키워갑니다. 이 공감력은 단지 친구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타인을 배려하거나 협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심리 능력은?
재난 상황은 비상식적인 공포와 불안, 긴박함이 몰아치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이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하려면 다음과 같은 심리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 자기조절력 – 불안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통제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 신속한 판단력 – “어디로 가야 하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를 빠르게 결정하는 힘
- 협동과 소통 능력 – 함께 있는 친구나 어른과 의사소통하며 함께 행동하는 능력
- 타인의 감정 인식 능력 – 누가 다쳤는지, 누가 무서워하는지 파악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 감각
특히 3번과 4번은 ‘공감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행동입니다. 혼자만 살겠다고 뛰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따라오지 못하는데?”, “저 친구가 울고 있어”를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아이가 재난 속에서도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 : 공감능력이 빛난 아이들의 이야기
사례 1 : 울산의 초등학교 화재 훈련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화재 대피 훈련 중, 실제처럼 연막을 피운 상황에서 한 아동이 당황하며 뒤처졌습니다. 그때 같은 반 친구가 “얘 데려가야 돼!”라고 소리치며 손을 잡고 함께 대피한 일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평소 역할놀이와 협동 게임을 즐기던 아동으로, 감정 표현과 타인의 감정 인지에 익숙했던 아이였습니다.
사례 2 : 일본 동일본 대지진 당시 초등학교 사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이와테현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먼저 서로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이동해 전원이 무사히 대피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는 평소 협동 놀이 교육과 감정 나누기 수업이 잘 이뤄졌던 곳으로, “모두가 함께 도망가야 해”라는 생각이 아이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평소에 타인을 인식하고 협력하는 습관이 있는 아동은 위기 상황에서도 자동적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본 공감놀이와 재난 대응력의 연결
공감놀이를 자주 한 아이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 기제를 통해 재난 대응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 정서공감 능력의 발달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얼굴 표정, 말투, 상황을 통해 파악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재난 상황에서 무서워하거나 다친 친구를 알아보고 도울 수 있게 됩니다. - 자기-타자 분화 능력 강화
놀이를 통해 ‘나와 너는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개념을 익히며, 재난 상황에서도 자기 중심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타인을 고려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의사소통의 자연스러움
협동 놀이를 통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대화 경험은 위기 상황에서도 “이리로 가자”, “저쪽 위험해” 등의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이어집니다.
공감놀이를 통한 재난 대비 교육, 어떻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학교나 가정에서 공감놀이를 통한 재난 대비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1. 역할극 기반 재난 상황 연출
아이들이 소방관, 환자, 구조자 역할을 맡아보게 하여 서로의 입장을 경험하게 합니다.
“친구가 무서워하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같은 공감 질문을 포함한 역할놀이가 중요합니다.
2. 재난 상황을 주제로 한 협동 보드게임
게임 속에서 화재나 지진을 겪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플레이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이기려면 서로 도와야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공감+전략+협동을 동시에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3. 감정 표현과 나누기 활동
재난 교육 후 “어떤 느낌이 들었어?”, “친구는 무서워 보였어?” 같은 질문을 통해 감정을 인지하고 언어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과정이 기억과 감정의 통합 학습으로 이어집니다.
공감이 강한 아이가 재난에서도 강하다
공감은 단지 착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과 공동체 보호의 본능이자 기술입니다.
공감 능력이 높은 아이는 재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스스로도 더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난 대비 교육은 단지 ‘어떻게 도망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함께 데리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서운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를 함께 묻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공감놀이는 재난 대비의 심리적 기초 체력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이 함께 놀며 감정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는 그 시간이, 내일 위기 상황에서 모두를 지키는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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