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심리학

트라우마를 예방하려면 첫 72시간이 중요해요

daon-eju 2025. 6. 27. 17:23

재난 직후, 마음을 지키는 황금시간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건.
예상치 못한 사고나 자연재해, 충격적인 소식, 상실, 폭력…
삶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혼란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채 방치되면, 그 경험은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로 굳어져 우리 삶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트라우마는 사후에만 대응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재난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후, 초기 72시간이 트라우마 예방의 핵심 시기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라우마를 예방하려면 첫 72시간이 중요

 

왜 72시간이 중요한가요?

 

심리학에서는 사건 발생 직후 72시간을 ‘심리적 응급처치(Psychological First Aid)’의 황금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감정이 가장 예민하고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회복을 위한 개입 효과가 가장 높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뇌는 큰 충격을 받으면 ‘위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증하고, 기억과 감정 처리 기능이 혼란스러워지죠.
이때 적절한 안정과 지지를 받지 못하면, 뇌는 그 순간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저장해버립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도 반복적인 회상, 악몽, 불안, 회피 반응 등이 생기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초기 72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 사건 직후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와 행동은 무엇일까요?

안전한 공간 확보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벗어나 물리적으로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이때 주변에 익숙한 사람이나 평온한 환경이 있다면, 심리적인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 “지금은 안전하다”는 감각을 몸과 뇌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

충격 후에는 밥맛이 없고 잠도 오지 않지만, 가능한 한 따뜻한 음식, 물, 휴식, 수면 등을 취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행위들이 신체의 긴장을 낮추고, 정서적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따뜻한 차 한 잔, 담요 하나가 놀라운 회복 효과를 줍니다.

감정 표현 허용

“울면 안 돼”, “참아야지”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깊이 쌓여서 훗날 더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당시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말이 어려울 경우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도 좋습니다.

→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고통은 ‘내가 다룰 수 있는 감정’이 됩니다.

사실 기반 설명 듣기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이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혼란 속에서는 추측과 상상이 현실보다 더 무섭게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한 상태고, 우리는 안전해. 필요한 건 이런 것들이야.” 같은 간단한 설명이 불안을 낮춥니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기

많은 사람들이 사건 직후 자신을 탓합니다.
“내가 더 조심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의 행동은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대처할 수는 없습니다.

→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해주세요.

 

이런 행동은 오히려 위험해요

 

초기 72시간 안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트라우마를 강화하는 반응들도 있습니다.

  • “다 지나간 일이야, 잊어버려.”
    → 감정을 억지로 닫게 만들고, 처리되지 못한 고통이 잠재됩니다.
  •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었어. 너는 별거 아니야.”
    → 비교는 고립감을 키우고, 자기 감정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 “괜찮아, 울지 마.”
    →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말은 오히려 회복을 방해합니다.

이 시기에는 공감하고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괜찮지 않다면

 

초기 72시간이 지났음에도 다음과 같은 증상이 계속된다면, 심리적 외상이 고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끊임없이 사건이 떠오른다
  • 잠을 잘 수 없다, 악몽을 반복한다
  • 특정 장소나 사람을 피하게 된다
  •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감정이 무뎌진다
  •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지체하지 말고 전문 상담기관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지역 보건소나 복지센터에서도 무료 심리상담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 많으니 활용해보세요.

 

예방은 치료보다 강력합니다

 

트라우마는 단지 힘든 기억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마주했을 때 보내는 생존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 반응이 굳어지기 전에, 즉 첫 72시간 안에 마음을 돌보는 것
치유보다 훨씬 강력한 예방의 열쇠가 됩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그 72시간에 함께 있는 존재라면, 혹은 지금 막 재난을 겪은 본인이라면,

기억하세요.

“지금 나의 감정은 정상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을 지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회복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