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재난 경보나 위기 소식을 접하며 살아간다. 지진 긴급 알람, 폭우 예보, 미확인 전염병 뉴스, 그리고 실시간으로 퍼지는 SNS 속 충격적 장면들. 그러나 이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경고일 때도 있다. 이런 ‘가짜 재난’ 혹은 ‘허위 경보’는 실제 재난 못지않게 사람들의 심리에 큰 혼란을 일으키며, 때로는 신뢰 붕괴와 심리적 탈진까지 초래한다.
잘못 울리는 사이렌 : 경보가 주는 스트레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하와이에서 발생한 미사일 경보 오발령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주민들은 “미사일이 곧 도착한다”는 문자 알림을 받고 혼비백산했다. 부모는 아이를 욕조에 숨기고, 노인은 지하실로 대피했고, 도로에는 차량이 엉켜 혼잡을 빚었다. 약 38분 후 오경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시간 동안 시민들이 겪은 심리적 충격은 결코 가상이 아니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Acute Stress Reaction)에 해당한다. 가짜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신체는 똑같이 ‘싸우거나 도망가기(fight or flight)’ 모드로 전환되며, 심박수 증가, 호흡 곤란, 땀, 불안, 판단력 저하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사건 이후 일부 시민은 불면, 공황, 분노 반응을 지속적으로 겪었으며, 몇몇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기도 했다.
거짓 정보가 진짜 공포를 만든다
오늘날은 정보의 속도가 곧 위력이다. 하지만 빠른 정보가 항상 정확한 정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SNS와 유튜브,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가짜 재난 정보는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영상과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정보는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직접 목격한 듯한 심리 반응’을 유도해, 인지적 오류(cognitive distortion)를 부추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지진 피해 사진이 돌았는데, 실제로는 수년 전 다른 국가의 이미지였다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이미 이미지를 본 사람들은 ‘재난이 발생했다’는 감정적 인상(impression)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집단적인 불안 전이, 루머 확산, 지역 주민의 패닉 반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복된 오보가 만드는 ‘재난 무감각’
한편, 반복된 잘못된 경보나 과장된 뉴스는 사람들의 심리를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놀라고 대비하지만, 같은 경보가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과장이 반복되면 “어차피 또 괜찮을 거야”라는 심리적 둔감화가 발생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경보 피로(Alert Fatigue)’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실제 재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풍 경보가 수차례 큰 피해 없이 끝나자 이후 진짜 큰 피해가 예상되었을 때도 많은 시민이 대피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가짜 경보가 만들어낸 신뢰 붕괴는 결국 실제 재난 시 대응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적 대피소”가 필요한 이유
가짜 재난은 물리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침범한다. 인간은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동으로 ‘생존 모드’로 진입한다. 이 과정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며, 자주 반복되면 만성적인 불안, 과민 반응, 심지어는 사회적 회피나 의심으로 연결된다. 즉, 가짜 재난이 실제 정신적 재난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의 정확성과 함께, 사람들의 감정과 불안을 안정시켜줄 수 있는 ‘심리적 대피소’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허위 경보 이후 신속한 사실 확인과 함께 심리적 안내 메시지를 제공하거나, 반복적 노출로 인한 피로감을 고려해 경보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경보는 단순히 알리는 기능이 아니라, 사회 신뢰를 설계하는 중요한 행위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정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은 ‘믿음’이다. 하지만 재난과 관련된 가짜 정보, 과장된 보도, 무분별한 경보가 늘어나면 사람들은 무엇도 쉽게 믿지 않게 된다. 그 결과, 과도한 경계와 의심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재난이 오기도 전에 감정적 소진(emotional burnout)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가짜 재난’이 가져오는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의 회복탄력성(resilience)마저 약해진다는 점이다. “또 오보겠지”, “이젠 아무것도 놀랍지 않아”라는 식의 무기력한 태도는, 진짜 위기 속에서 우리의 생존 본능을 둔감하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인지적 회피(cognitive avoidance)와 연결되며, 회복보다는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정보의 신뢰, 감정의 안전
재난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지만, 심리적 재난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잘못된 경보, 과장된 정보, 가짜 뉴스는 실제 위협이 아닌데도 우리 안의 감정 경보 시스템을 계속 자극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반대로 무감각해지는 양극단을 경험한다.
앞으로의 재난 대응은 기술과 시스템 개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심리적 안전과 정보 신뢰를 함께 설계하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 가짜 재난의 반복을 줄이고, 진짜 재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 모두가 정확함과 책임, 그리고 감정의 영향력을 인식해야 한다.
'재난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의 전염 : 감염보다 먼저 퍼지는 공포 (0) | 2025.06.29 |
---|---|
재난 이후 ‘영웅화’ 심리 : 왜 누군가는 특별히 기억되는가? (0) | 2025.06.29 |
가상재난 시뮬레이션과 감정의 실제 반응 (0) | 2025.06.28 |
사이버 공격이 가져오는 집단 심리의 붕괴 (0) | 2025.06.28 |
기후불안 : Z세대가 느끼는 재난의 미래와 심리 (0) | 2025.06.28 |